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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ulzip posted Jan 13,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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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끼줄·가마니짝이 '핸드백' 되기까지

기사입력 2005-03-08 17:35 |최종수정2005-03-08 17:35
[오마이뉴스 곽교신 기자]또 하나의 사라져가는 우리 문화

핸드폰으로 자장면과 다방커피를 논두렁까지 주문해 먹으며 농사일을 하는 시대에 볏짚 생활용구를 들춰내는 일은 시대착오로 보일 수도 있다. 도시는 물론 농촌에서도 짚제품은 용도 폐기된 물건들이다. 나뭇가지에 비끄러 맨 풀각시 머리를 손빗질로 쓸어내리던 것도 50대 중후반에서 단절된 감촉이다.

탈곡한 볏짚을 가지런히 쌓던 것도 옛날 일이다. 벼베기와 탈곡이 동시에 처리되니 트랙터가 지나가며 논바닥에 내던져진 볏짚더미의 모양 사납기는 귀신 머리채다.

 
▲ 재현된 백제의 짚갑옷. 짚풀생활사박물관 소장품.
ⓒ2005 곽교신
'(볏)짚'에 품위있게 '문화'를 붙이고 틈새에 보기 좋게 '풀'도 치장하면 이름도 예쁜 '짚풀문화'가 된다. 우리 전통문화에 남다른 애착이 있다고 생각하는 필자가 이 짚풀문화를 귀중한 고유 문화의 하나로 뚜렷하게 재인식한 것은 부끄럽게도 지난해 10월이었다. 그러나 그때부터 틈틈이 수집한 자료의 결과는 '고유의 짚풀문화는 지금 빈사 직전에 있다'는 것이었다.

우리 짚문화의 문화사적 독창성에 주목하고 일찍이 우리 짚풀문화 전반의 기록과 채집에 애써온 인병선 관장(짚풀생활사박물관) 같은 분들의 노력이 있기는 했으나, 대부분의 우리들 인식 속에서 '짚풀문화'는 여전히 '새끼줄'이요 '가마니짝' 수준인 것이 사실이다.

백제 민병대의 짚갑옷은 볏짚이 이미 오래 전에 광범위하게 활용되었음을 실증한다. 재현된 작품은 갑옷으로서의 기능성도 좋아 보인다.볏짚의 용도가 새끼줄이나 가마니를 벗어난 것이 천 년도 더 된 일인 것이다.

멀리는 벼농사가 시작된 청동기 시대부터 끈끈하게 이어졌을 소중한 우리 짚풀문화가 우리 세대에 철저히 잊혀져가고 있다. 이건 중대한 문화적 손실이다. 세계적으로 독특한 우리의 볏짚 및 들풀문화를 지금처럼 처박아 던져버려도 후대에 아무런 후회가 없을까. 우리의 짚풀문화는 정말 '새끼줄'이요 '가마니짝'에 불과할까.

우리 짚풀문화의 유일성과 독창성

볏짚은 밀짚보다 다양하고 광범위하게 사용된다. 속이 빈 대롱(straw) 구조로 마르면 쉽게 부서지는 밀짚은, 속이 찼으면서도 부드러운 볏짚의 감촉과 내구성을 따라오지 못한다. 벼문화권 중에서도 특히 우리 한반도의 짚문화는 활용도 면에서 매우 광범위하며, 문화사적 측면에서도 독특하다.

 
▲ 도롱이. 강태생 作.
ⓒ2005 곽교신
오천년 역사 유산의 하나인 짚풀문화를 우리 세대에서 단절시켜서는 안 된다. 그것은 실생활의 활용편의를 따지는 비교 우위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고유 문화의 보존이라는 차원 높은 가치의 문제이다.

그러나 문화에도 적자생존의 법칙은 적용된다. 전통의 보존을 위해 불편을 감수하라고 할 수는 없다. 우산 대신 도롱이를 쓰고 현대생활을 하는 것은 무리다.

그러나 도롱이를 인테리어의 소품으로 활용한다면, 그 도롱이는 생기 넘치는 부가가치를 창조할 것이다. 가장 친환경 친자연적 소재인 짚풀문화 부활의 가능성은 취재 과정에서 충분히 느꼈다.

전통과 현대의 조화라는 영원한 숙제

짚제품을 디지털시대 대중의 관심권에 두려는 짚공예가들의 노력은 정열적이다. 정말 짚(또는 풀)으로 만들었느냐는 질문이 절로 나올 정도의 작품도 많아서, 짚풀문화의 끈질긴 생명력은 우리 민족의 은근과 끈기와 닮은 것이 아닌가 싶기도 했다.

▲ 망태기의 밑바닥 시작점을 다량 연속적으로 연결한 작품. 전성임 作.
ⓒ2005 곽교신
당장 어깨에 메고 홍대 앞으로 나가도 신세대 패션에 속할 핸드백이 들풀의 하나인 왕골로 전통적 엮기기법에 의해 만들어졌다면 믿겠는가. 같은 기법으로 엮은 까실한 감촉과 세련된 문양의 쿠션도 재료가 왕골이다. 여름에 베고 누우면 절로 시원한 바람이 나올 듯하다.

"우리 전래의 엮기기법은 살리되 색감과 질감을 현대인의 감각에 맞추는 것은 두 마리의 토끼를 잡는 것만큼이나 어렵다"고 말하는 풀짚공예가 전성임(58·성남시 분당구)씨는 전통의 기법과 재료에 현대 감각을 입히는 작업에 끊임없이 몰두하고 있는 작가다. 이런 시도는 궁극적으로 우리 짚풀문화가 나가야 할 길이다.

쓰여져야 살아 있는 문화다. '살아서 변화하는 문화재'인 무형문화재의 진정한 의미는 일반 대중이 끊임없이 만지고 느끼고 즐겨 사용하며 문화형을 이어나가는 데 있다.

 
▲ 가마니 소품. 문경 고요리 노인회 作
ⓒ2005 곽교신
경북 문경읍 고요1리 노인회원들은 전래의 투박함을 유지한 각종 짚제품을 실물크기 또는 축소형으로 제작한다. 경상북도와 문경시의 지원으로 안정된 판로가 마련된 덕택에 짚제품을 판매해 만만치 않은 수익도 올리는 경우이다.

수요자들은 짚물을 실사용 목적보다는 주로 장식품으로 사용하는 것으로 보인다. 원형 그대로의 가마니를 크기만 줄인 제품은 반응이 좋아 수요를 따라가기 힘들다는데, 이처럼 짚풀제품으로 수익이 생긴다면 젊은층의 유입도 활발할 것이며 그것은 자연스런 전통의 계승으로 이어질 것이다. 전통문화도 먹고 살아야 이어진다.

 
▲ "방석지갑"이라 불러도 좋을 짚방석. 강태생 作.
ⓒ2005 곽교신
윗판은 볏짚, 아래 판은 띠(들풀의 일종)로 엮어 겹으로 붙인 방석의 한 틈을 일부러 열었다. 서찰 현금 등을 보관하는 비밀주머니 격이다. 이 습속은 현대로 이어져 장판지 밑에 돈을 감췄다가 이사 때 잊고가는 에피소드의 원형이다.

문화의 뿌리는 이렇게 길고도 질기다. 강태생(84. 충북 음성군) 선생은 비교적 전래의 기법과 형태를 유지하고 계신 편이다.

▲ 보리짚으로 만든 크리스마스트리 장신구. 전성임 作.
ⓒ2005 곽교신
전래의 여치집 기법에서 응용한 크리스마스트리 장신구는 단숨에 동양과 서양의 감각을 뛰어넘은 창작품이다. 여치집과 크리스마스 트리라는 전혀 무관한 이미지를 환상적으로 이어놓은 이 작품은, 전통과 현대를 이으려는 짚풀공예가들 노력의 상징처럼 여겨진다.

짚문화의 무궁무진한 현대적 응용

전통문화 전 분야의 공통된 고민이지만, 과연 무엇이 전통이고 어떻게 하는 것이 전통의 유지인가는 함부로 규정할 것이 아니다. 인류가 고전적인 의미에서 전통을 엄격하게 보존 유지하며 21세기까지 왔다면, 우리는 지금도 짐승 털가죽을 걸치고 사냥을 다녀야 맞다. 그러나 그것은 전통 유지 보존의 참뜻은 아니다.

 
▲ 천정에 매달린 메주? 강태생 作.
ⓒ2005 곽교신
형광등 옆에 매달린 것은 메주가 아니다. 메주덩이를 짚으로 엮어 말리는 것에서 힌트를 얻어, 갈색 유리를 성형해 메주 모양으로 만든 전등이다. 이 아이디어를 낸 이가 젊은이가 아니라 84세의 노인이란 점이 흥미롭다. 전통의 관념과 전통 응용의 한계에 나이가 장애가 아님을 이 작품은 상징한다.

충북 음성에서 개인 공방을 열고 주로 후학을 지도하며 짚풀공예의 후대 전승에 애쓰는 강태생 선생의 작품은 전통 짚풀기법과 현대 감각의 중간에 서 있는 느낌이 강했다.

 
▲ 보리짚으로 만든 카드.(일본 제품)
ⓒ2005 곽교신
일본의 짚풀마니아가 만들어 짚풀생활사박물관 인병선 관장에게 보냈다는 보리짚 카드는 전통문화 각 분야를 돌며 끈질기게 따라다니는 일본의 유령을 또 느끼게 할 만큼 섬세했다. 특히 오른쪽 카드의 별은 가는 철사로 만든 1cm 크기인데 보리짚을 따라 아래 위로 앙증맞게 움직인다.

이 카드를 보며 임진왜란 때 잡혀간 조선 도공의 후손들에 의해 결국은 일본이 세계적인 도예국가로 도약했음을 상기하며, 우리에 비해 짚풀문화의 바탕이 깊지 못한 일본이 짚문화에서도 한국을 앞서는 것이 아닌가 하는 조바심을 느껴야 했다.

▲ 나무기러기를 응용한 짚기러기. 짚풀문화의 다양한 활용 가능성을 제시하는 상징적 작품이다. 인병선 작.
ⓒ2005 곽교신
지금 '문화'는 세계 각국의 중요한 국가 트렌드이다. 중국의 고구려사 침탈에 이은 발해사의 왜곡은 우연이 아니라 일찍이 문화 트렌드의 가치에 주목한 장기 문화정책의 일부이다.

한류 바람을 바라보는 견해의 차이는 있지만, 한류 스타들의 우리 대중문화 전파력 및 외화 수입 규모는 말 그대로 '걸어다니는 중소기업'이다. 아직 전국 곳곳의 장인들에게 살아 있는 '문화로서의 짚풀공예기능'도 얼마든지 한류 바람의 대열에 설 수 있다. 그만큼 우리의 짚문화는 독창적이다.

짚풀문화는 결코 불편불결한 가마니짝이나 놀다 버리는 풀각시가 아닌 우리의 소중한 무형문화재다. 호기심과 사랑만 있다면 지금 당장 아파트 마당에서도 풀각시를 만들어 그 아련한 감촉을 다음 세대로 이어줄 수가 있다. 그런 간단한 관심과 실천은 전통문화를 또 한 세대 연장시키는 귀중한 일이 될 것이다.

/곽교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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