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후만세·(4)] 풀짚공예박물관 전성임 관장 전국 돌며 풀짚공예 배워… '잊힌 조상들의 문화 필요할 것' 경인일보기사

by pulzip posted Apr 19,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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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짚공예박물관1

광주시 오포읍 풀집공예박물관 내부 모습. /구민주 기자 kumj@kyeongin.com


"귀하게 생각하면 보물이고 하찮게 생각하는 사람에겐 쓰레기잖아요." 풀짚으로 만든 공예품에 대한 전성임(사진) 풀짚공예박물관장의 설명이 다소 충격(?)적이었다. 우리는 풀짚 공예에 대해 과연 어떻게 생각하고 있었을까.

사극의 영향인가? 퍼뜩 떠올린 풀짚 물건이라 하면 옛날 사람들이 신던 짚신, 비 올 때 쓰던 도롱이, 줄기로 엮은 바구니 정도였다.

 

 

주변에서 곧잘 볼 수 있는 풀로 만들어진 공예품이라 쉽게 생각할 수 있지만, 사실 메주에 다는 새끼줄 하나 꼬는 것도 기술이 필요하다. 어렸을 때부터 남달리 손으로 만드는 것을 곧잘 해내던 전 관장이 단순한 취미에서 풀짚 공예에 깊이 빠져든 이유는 잃어버린, 또는 잃어가는 우리 기술에 대한 계승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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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르신들 만나 재료 찾고 도구 등 수집 기록
전주 골동품 가게서 본 망태기 직접 짜기도
40년 세월 바쳐 비로소 '자료 구축' 역할 해내

 

오늘날 우리가 구입하는 나무줄기나 풀짚으로 짜서 만든 물건 대부분은 수입품이다. 과거 선조들이 풀, 짚과 같은 재료로 만들었던 생활품은 도자기와 금속 등의 고급 공예품에 비해 평가절하돼 왔다.

전 관장은 "묶고 매는 기초적인 문화는 우리가 터득하고 있어야 하지 않겠나. 누군가는 (이 기술을) 쥐고 있어야 한다"며 "잊혔던 조상들의 문화가 다시 필요로 하는 시대가 오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일종의 사명감을 느낀 전 관장은 전국 방방곡곡을 돌아다니며 짚 공예를 한 어르신들을 만났다. 산에 모시고 다니면서 재료를 찾기도 하고, 그들이 쓰던 도구를 기록하고, 풀로 엮어서 만들 수 있는 다양한 공예품과 짚을 엮어내는 기술을 수집해 정리하는 것에 몰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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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집공예박물관 전성임 관장. /구민주 기자 kumj@kyeongin.com


지방으로 자료조사를 다니던 시절, 하루는 전주의 허름한 골동품 가게에 들어갔다. 그곳에서 박물관에서도 보지 못했던 망태기를 만난 전 관장은 눈이 번쩍 뜨여 사고 싶었지만 주부에게 100만원이 훌쩍 넘는 금액은 부담이었다.

그때부터 전 관장은 가게를 계속해서 들락날락했다. 끈의 길이가 얼마나 되는지, 폭은 얼마인지, 무늬는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등 틈틈이 눈으로 관찰한 것을 밖으로 나와 수첩에 그렸다.

그리고 숱하게 밤을 새우며 만든 지 한 달 만에 같은 망태기를 완성했다. "나 따라올 사람 있으면 나와보라고 해." 뿌듯함과 긍지로 가득 찬 전 관장의 목소리는 저절로 높아졌다고 한다. 마음 먹으면 해내고 마는 집요한 덕후의 공통점을 발견했다.

힘들게 수집한 자료로 책을 내고, 박물관을 만들어 풀짚 공예를 알리고, 수강생들에게 기술을 전달해주고 있는 전 관장. 그렇게 40여 년의 세월을 바치고서야 비로소 그는 "자료 없다는 소리는 안 나오게 하고 싶다"던 자신의 역할을 어느 정도 해냈다고 생각하는 듯했다.

생각해보니, 전 관장과 얘기하면서 가장 많이 나왔던 단어가 '미쳤다'였다. 미치지 않고서는 할 수 없었던 일, 미치지 않고서는 쌓이지 않았을 시간. 풀짚 공예에 미친 전 관장의 마지막 바람은 "나와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이 이 길을 이어가는 것"이다.

/구민주기자 kumj@kyeongin.com